<현금의 재발견> CEO와 장기 주가수익률

Date published
February 9,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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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원제는 [The Outsiders] 로, 경영의 신이라 불린 잭 웰치의 재임기간(1981~2001) 동안 GE의 주가수익률을 월등히 능가한 기업의 CEO들을 살펴보고, 공통점을 정리한 책이다. CEO라면 의례적으로 하는 대외 활동들을 거의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원제는 아웃사이더인 것 같고, EBITDA라는 용어조차 없던 시절 공통적으로 회계적 이익보다 현금흐름을 중시했고 그러한 관점으로 기업 가치를 높였다는 점에서 한국어판 제목은 <현금의 재발견>이라고 붙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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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연구한 8개 기업의 주가수익률은 20~30년동안 연평균 20% 내외로, 아마존의 상장 이후 30년 가까운 기간동안의 주가상승률과 비슷하다. 워렌 버핏의 버크셔 해서웨이를 제외하고 7개 기업 중 5개 기업은 각각 디즈니, 네슬레, 아마존, 컴캐스트, AMC에 인수되었다.

(책 구성 자체가 Case Study를 엮은 형식인 것도 있지만, 1960~90년대의 생소한 기업들이라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뒤집어 말하면 전통 산업에서 오늘날 disruptive innovation을 이룬 테크 기업과 비슷한 성과를 이루어냈다는 점에서 진정한 연구 대상이다)

책에서 연구한 CEO들은 본업의 운영은 역량이 뛰어난 인재를 찾아 최대한 권한을 위임하고, 자본 배분에 좀더 집중했는데, 한마디로 뛰어난 투자자였다. (물론 케이블TV 사업의 경우 가입자당 원가를 낮추거나, 미디어 사업의 경우 광고 점유율 상승을 위해 컨텐츠의 질 향상에적극 투자하는 등 기본적으로 본업의 핵심 경쟁력에 대한 통찰도 있었다) 공통적으로

1) 주가가 쌀 때 대규모로 자사주를 매입하고,

2) 경쟁사나 시너지가 날 회사들을 싼 가격에 매수해 빠르게 실적을 개선시킨 후에 인수 비용으로 쓴 차입금을 갚았다 (외부 차입은 버핏 제외).

의사 결정의 기준은 매출이나 주당순이익의 ‘성장’ 이 아닌 ‘현금수익’ 창출에 있었다. 책에 따르면 컴캐스트에 인수된 케이블TV 회사 TCI를 이끌었던 존 말론이 주당순이익을 무시하고 현금흐름 지표에 집중하는 과정에서 영업현금흐름 개념을 설명하는 EBITDA라는 용어를 고안해냈다고 한다.

💰 배당 vs 자사주 매입

책에 나온 CEO들은 또한 배당을 거의 하지 않고 자사주 매입을 활용했다. 배당은 지급하는 기업과 받는 투자자 모두에 세금 면에서 불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자사주 매입(미국은 대부분 매입후 소각)은 투자자가 주식을 매도할 때 세금이 발생하기 때문에 원천징수되는 배당소득세 대비 세금 이연 효과가 있다 (국내 투자자는 배당소득세율이 양도소득세율보다 낮지만 매도 시점으로 세금 이연 효과는 동일). 중요한 것은 CEO가 주주들의 세후수익률까지 고려할 정도로 주주 이익 극대화에 가치를 두었다는 점이다.

Cash is Trash? No more..

10년 넘게 저금리가 지속된 데다 코로나 이후 유동성이 급증하면서 레이 달리오가 20년 초 Cash is trash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었고 실제로 21년 적자 성장주들의 주가가 아웃퍼폼하는 현상이 극에 달했었다. 사용자 수와 거래 금액이 커질수록 현금을 소진하게 되는 BNPL (Buy Now Pay Later) 기업 Afterpay가 퀀트 모델에서 Short으로 잡혔었는데 PDR (Price-to-Dream Ratio) 이라는 밸류에이션 신조어가 생겨날 정도로 미래 성장주들이 날아갔고, 22년에는 드라마틱하게 금리 인상이라는 역풍을 맞게 된다. (Block이 2021년 8월에 Afterpay를 30조에 인수를 발표했다: 자본배분 관점에서 주주 수익을 훼손하는 나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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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d가 올해 미국 기준금리 3회 인하를 명시한 상황에서도, 과거와 같은 저물가, 저금리 시절로 돌아가기는 힘들 거라고 생각한다. 2000년대 저물가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중국의 WTO가입 이후 저가의 공산품을 전세계에 공급한 덕분이었고, 탈세계화 흐름 속 공급망 현지화는 경제학에서 “비교 우위”로 설명되는 원가 경쟁력을 낮출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전제 하에서 현금흐름은 의사 결정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제로 금리에서 5% 이자, 배당수익율은 매력적인 자산이었지만, 기준 금리가 3% 일 때는 투자 매력이 높지 않은 것처럼, 주식을 볼 때에도 기업의 Free Cash Flow와 적절한 차입금 수준 등 현금 수익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뛰어난 CEO가 운영하는 기업에 장기 투자하는 것은 현재도 유효한가?

마켓에서 주식 투자할 때 경영진을 간과하는 경우가 많은데, 경영진의 결정들은 장기적으로 기업의 펀더멘털, 따라서 주가수익률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넷플릭스에서 보잉의 최근 항공기 사고 원인과 실상을 파헤친 다큐 <다운폴>에서 직원들은 제품의 질과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자유롭게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조직 문화가 1996년 더글라스와 합병 이후 경영진이 원가 절감과 주가 상승에 우선순위를 두면서 조직 문화가 완전히 달라졌고, 이것이 최근까지도 계속 보도되는 사고와 결함들의 단초가 되었다고 한다. 인텔은 어떤가. 2013년 취임한 브라이언 크르자니치가 원가 절감을 위해 (단기 순이익을 올리기 위해) R&D 인력을 줄였고, 경쟁사 AMD에 2014년 리사 수가 CEO로 취임하면서 점유율을 뺏겨 왔고, 어제 ARM 주가가 48% 급등한 것은 개인적으로 슈퍼 컴퓨팅 시대에 CPU 신흥 강자 출현의 신호탄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어떤 기업을 볼 때에 오너와 CEO가 어떤 의사 결정을 하는지를 지켜보는 것은 네거티브 스크리닝(아닌 회사를 제하는 것), 리스크 관리 측면에서 매우 중요하다. 얼마 전에 해외에 과자를 잘 팔던 오리온이 몸값이 오른 레고켐 바이오를 인수하면서 하루만에 주가가 18% 하락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받는 이유다.

올해 국내 시장은 펀드매니저들에게는 초고난이도 시장이었는데, 정부의 저PBR주 밸류업 프로그램으로 금융, 건설, 자동차 등 섹터 주가가 펌핑되면서 코스피 지수가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융지주, 삼성물산 등 몇천억 규모의 자사주 매입, 소각을 발표하면서(생각하건대 정부 압력이 있었을 것 같은) 시장은 오르고 있지만, 선거를 앞두고 표심을 노린 정책발에 불과해서 오래 갈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다룬 것처럼, 지속 가능한 주주환원은 오너와 경영진의 “의식”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저자는 2003년에 책 내용을 구상하기 시작했고 장기간 리서치 끝에 2012년에 원서가 출판되었고, 국내에는 2019년 번역본이 나왔다. 과거 사례들이라 이질감이 있지만, 이 책에 나오는 CEO들의 ”독립적이고 합리적인, 분석에 근거한“ 사고 방식은 시대가 변해도 탁월한 사업가나 투자자가 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질일 것이다.